뭐랄까.., '처연함'이 느껴지는 영화다.
몰락해가는 이탈리아의 (혹은 유럽의) 숙명을 어떻게든 폼나게 받아들이려는 자의 그 처연함..!
영화 마지막의 길고 긴 '엔딩 크레딧'은 끝내고 싶지 않은, 그러나 이미 끝나버린 로마네스크 문명을 애도하는 쓸쓸한 조곡 같았다.
무반주로 이어지는 그리고 서늘한 느낌의 조용한 중창, 강을 따라 느리게 유영하는 카메라의 시선, 그리고 그 시선에 비춰지는 낡고 오래된 로마의 건물들, 거리들...
아름다움과 낡음과 가난함과 고독이 교차하는 그 건물들 사이를 걸어봤기에, 이 엔딩 크레딧(라스트씬이기도 하다)이 주는 쓸쓸함을 미약하게나마 이해할 것 같다.
그리고 엔딩 크레딧을 따라 올라가는 무수한(정말 너무나 많은!) 이름들의 허망함에 공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작품을 만드는가..?
무엇을 위해 예술을 하고 문화를 이루며 문명을 만들어가는가..?
영화 내내 주인공의 냉소적이고 자조적인 표정에 쉽게 공감이 안 되더니, 영화 마지막 씬에서 격하게 공감을 느끼고 말았다..
식물의 뿌리만 먹고 산다는 그 수녀님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왜 식물의 뿌리만 먹는지 알아요? 뿌리가 중요하기 때문이지요."
너무나 상투적인 이 대사는 그러나 영화의 무거운 주제이기도 하다.
로마의 문명이 화려한 영광이었다거나 그 문명이 현대의 또 다른 문명을 이기지 못하고 쇠락했다는 얘기는, 분명 너무나 상투적이다.
하지만 그 상투적인 역사를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이들에겐 그 상투성 자체가 더할 수 없는 아픔과 쓸쓸함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누가 그들을 위로해주겠는가?
몰락과 쇠퇴를 잊고자 세속적 삶, 쾌락의 나날에 빠진 그들에게 누가 동정을 보내겠는가?
완벽한 아름다움의 첫사랑을 잃고 오로지 세속적 삶에 도취에 삶았던 주인공 젭 감바르델라.
이제는 65세라는 노년을 마주해 자신의 쇠락과 종말을 받아들여야 하는 그.
주인공 젭의 삶은 이탈리아의 숙명을 압축한다.
틈만 나면 주인공의 상상 세계를 가득 채우는 선명하고 밝은 파란색.
지중해의 색이자, 젊은 시절 주인공이 첫사랑을 만났던 바다의 색...
그 푸르디 푸른 색이, 영화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낡은 로마 건물들의 빛바랜 살구색과 절묘한 대비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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