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알모도바르의 다른 영화들보다 확실히 더 평범하고 통속적인 이야기의 영화다.
늙은 부호의 젊고 아름다운 정부가 배우를 꿈꾸다가 어느 영화감독과 사랑에 빠져 도피를 하는 이야기..
도피 도중 여자는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고, 남자 혼자 남아 여생을 살아가는 이야기...
소설에서, 드라마에서, 영화에서, 너무나 흔하게 듣고 보던 이야기다.

그러나 이 흔하디 흔한 이야기마저도 알모도바르의 영화에서는 가슴 깊은 곳까지 퍼져나가는 강렬한 파장을 일으킨다.
화면을 가득 메우는 스페인 남부의 아름다운 풍경과 아름다운 색채, 아름다운 음악, 그리고 평범하지만 애절한 사랑 이야기...
이 모든 것은 영화 속에서 한데 어우러져 기묘하면서도 애틋한 울림을 만들어낸다.
영화의 영어 제목은 'Broken Hugs', 스페인어 제목은 'Los Abrazos Rotos'...
그러니까 '깨어진 포옹' 혹은 '조각난 키스'...
스페인인들에게 Abrazos는 포옹과 함께 나누는 키스를 말한다.
진한 키스든, 가벼운 키스든..

사랑의 도피를 하던 두 남녀는 자동차 사고를 당하기 바로 직전에, 차 안에서 마지막으로 가벼운 키스를 나눈다.
짧은 포옹과 짧은 키스, 곧이어 일어나는 자동차 사고...
여자는 그 자리에서 바로 목숨을 읽고, 남자는 부상과 함께 실명을 하게 된다.
그리고 남자는 그 짧은 키스의 순간을,
짧지만 행복했던 사랑의 시간을 잊지 못한 채 평생 고독에 묻혀 산다.
먼 훗날 맹인이 된 남자가 우연히 구한 사고 당시 필름을 손으로 더듬으며 그때의 기억을 회상하는 장면은,
정말로 두고두고 잊지 못할 명장면이다.
커다란 스크린 위에서 사고 직전 두 사람의 키스를 찍은 장면이 천천히 돌아가고,
부족한 화질 탓에 점묘화처럼 희미해진 이미지 위를 남자가 손으로 더듬으며 옛 사랑의 기억을 떠올린다...
영화(film)야말로 '보이는 이미지'를 넘어 '보이지 않는 이미지'까지 보여줄 수 있다는 감독의 평소 신념이 절묘하게 드러나는 장면이기도 하다.
아무튼 평생을 지배하는 단 한 순간, 마지막 키스...
나는 믿는다.
긴 생의 시간보다 한때의 짧은 사랑이 평생토록 더 소중할 수 있다는 것을...,
오랜 시간 함께 살아온 사람보다 짧은 키스만을 나누고 헤어질 수 밖에 없었던 사람이
평생토록 한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모도바르는 이미 어떤 수준을 넘어섰다.
관조하듯 편안하게 평범한 사랑을 다루지만,
그 속에서 우리의 삶을 가로지르며 지배하는 사랑의 거대한 힘을 보여준다.
영화를 본 후 한참 동안 그 사랑의 힘에 빠져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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