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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24일 토요일

<파라노이드 파크 Paranoid Park> - 거스 반 산트 Gus Van Sant

 

 
다른 여러 거장 감독들처럼, 거스 반 산트 (Gus Van Sant)도 나이가 들수록 하나의 이야기와 하나의 정서적 상태로 돌아가고 있다  
바로, 십대 남자아이가 겪는 복잡하고, 여리고, 모호한 감정 상태... 
   
영화 <파라노이드 파크 Paranoid Park>(2007) 역시 겉으로는 청소년의 우발적 범죄를 소재로 삼고 있지만, 실제로는 청소년기를 지나고 있는 한 남자아이의 내적 혼란과 복잡한 심리상태를 이야기한다  
미국 소도시에 사는 한 청소년의 정신적, 정서적 방황에 대한 묘사에, 거스 반 산트 특유의 시간과 공간에 대한 세밀한 탐구가 더해진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무엇보다 내면적 '시간'에 대한 다양한 표현양식들이다.  
우연한 살인으로 괴로워하는, 그러나 그 괴로움조차 유리벽 밖의 그 무엇처럼 모호하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한 십대 남자아이의 내적 상태가 다양한 양태의 시간들로 표현된다  
 
주인공이 겪는 각각의 상황과 감정 상태에 따라 뚝뚝 분절되거나 조각조각 흩어지는 시간들이, 반복적으로 되살아나거나 천천히 늘어지는 시간들이, 혹은 마치 진공상태처럼 그대로 정지되어 있는 듯한 시간들이 영화 곳곳에 혼재되어 있다  
불규칙적이고 비연대기적인 시간의 상태는 주인공이 범죄 후 겪는 혼란한 마음의 상태를 그대로 나타내며, 그러한 시간의 인상과 느낌 또한 주인공이 살아내는 생의 인상과 느낌을 그대로 전달한다.
 
  
 
'공간'에 대한 인상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어느 장소이건 전체를 조망하는 일 없이 주인공이 지나치는 공간들을 대부분 분절의 상태로 보여준다  
수업을 듣는 학교의 교실도 그렇고, 가족이 있는 주인공의 집도 그렇고, 항상 필요한 공간만 분리되어 화면에 나타난다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공간들은 서로 연결되기보다는 서로 단절되고 분리되는 느낌이다.  
영화 후반, 주인공이 여자친구와 자전거를 타며 지나치는 평온한 동네의 모습이 오히려 판타지처럼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그러한 공간적 단절감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영화 중반, 익명의 아이들이 스케이드보드를 타는 커다란 환기구 내부 같은 공간은   
주인공을 포함한 한무리 십대 남자아이들의 심리적 공간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준다.  
양쪽으로 뚫려있지만 밖이 너무 밝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지극히 단순하고 한정된 그 공간...  
그 내부를 유영하듯 느리게 흘러다니는 십대 보더들...   
그 공간은, 너무 밝아 제대로 바라볼 수 없는 미래와 지극히 단순하고 제한된 현재를 살아가는 미국 십대들의 내적상태 그 자체다. 
   
Ethan Rose를 비롯한 여러 비주류 뮤지션들의 음악도 긴 여운을 남기고,  
온통 문신으로 무장한 자의식 과잉의 아버지와 한번도 제대로 된 모습을 보이지 않는 유령 같은 어머니의 모습도 짧지만 뚜렷한 인상을 남긴다  
굳이 감독의 동성애 성향에 연연하며 이 영화를 바라볼 필요는 없다  
어쩌면 자신의 평생을 결정지었을 인생의 한 짧은 시기에 대한 기억을,  
외적 사건들의 조각들이 아닌 내적 사건들의 조각들로 섬세하게 짜맞추어가는 감독의 노력이 동성애와 이성애라는 또 하나의 단순한 이분법을 가볍게 넘어서게 해준다

2015년 1월 22일 목요일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 Vicky Cristina Barcelona>(2008) - 바르셀로나, 카탈루냐 그리고 하비에르 바르뎀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
 
우리말 제목은 사실 상당히 깨는 편이다.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라니..,!
가끔은 홍보담당자들의 상투적인 감각들이 실제 관객 수요에 적잖은 타격을 입힐 때가 있다.

이 영화의 우리말 제목은 원제목을 그대로 번역했어야 했다.
아니면 적어도 바르셀로나를 집어넣던가.
여전히 스페인이 대세인걸 모르나...?ㅎㅎ
 
원제목 대로 갔더라면, 적어도 스페인에 대해 환상이나 동경을 품고 있는 관객들을 좀 더 끌어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우디 알렌, 바르셀로나, 스칼렛 요한슨, 하비에르 바르뎀, 페넬로페 크루즈...
이들의 조합만 제대로 홍보했어도 관객이 좀 더 들어왔을텐데..
  

 
 
스페인 남부지방을 상징하는 적갈색.
무엇보다 영화 내내 배경이 되어주는 다양한 건축물들의 적갈색이 인상적이다.
아름다운 스페니쉬 기타의 음악도 감미롭고..
한 여름 밤과 낮 동안의 꿈 같은 영화 이야기도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흘러간다.
 
우디 앨런과 홍상수는 자기가 아는 사랑과 자기가 아는 관계만 그린다.
그래도 홍상수에 비하면  우디 앨런은 인간관계, 사랑의 방식에 대해 좀 더 다양한 시선을 보여주는 편이다.
자기가 잘 알고 있고 선호하고 있는 관계 유형을 분명히 드러내지만,
다른 유형의 관계들도 적절히 제시하면서 한 편의 영화 안에 다양한 관계유형들이 공존하게 만든다.
이런 관계, 저런 관계들이 복잡하게 얽히면서도 서로를 반사하며 서로를 더 선명하게 드러내는 재주...
이 재주는 결코 홍상수가 갖지 못하는 비범한 재주다. 
 
 
 
바르셀로나와 카탈루냐의 아름다운 풍경, 그리고 누구나 한번쯤 꿈꾸는 낯선 장소에서의 낯선 사랑, 또 누구나 한번쯤 일어나길 바라는 파격적이고 일탈적인 사랑...
 
다 좋았는데.., 미국인들에게는 스페인이 단지 낭만적 일탈의 땅으로만 여겨지고 있는 것 같아 씁쓸했다.
딱히 아니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곳에도 나름의 삶과 시간이 있을 텐데 말이다...
 
아무튼 스칼렛 요한슨과 페넬레페 크루즈보다 카탈류냐 지방의 풍경이 더 아름다웠고,
카탈류냐 풍경보다 바르셀로나의 화가 역을 맡은 하비에르 바르뎀의 변신이 더 인상적이었다.
첫 장면부터 포도주색 셔츠를 입고 등장하는, 퇴폐와 열정과 자유와 낭만의 화신 같은 남자... 
도대체 이 남자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그 무시무시한 살인자가 맞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