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뉴 밀레니엄 클래식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뉴 밀레니엄 클래식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5년 1월 22일 목요일

<브로큰 임브레이스 Los Abrazos Rotos>(2009) - 평생을 지배하는 단 한 순 간, 한 번의 키스

 
 
이 영화는 알모도바르의 다른 영화들보다 확실히 더 평범하고 통속적인 이야기의 영화다.
늙은 부호의 젊고 아름다운 정부가 배우를 꿈꾸다가 어느 영화감독과 사랑에 빠져 도피를 하는 이야기..
도피 도중 여자는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고, 남자 혼자 남아 여생을 살아가는 이야기...  
소설에서, 드라마에서, 영화에서, 너무나 흔하게 듣고 보던 이야기다.
 
 


 
그러나 이 흔하디 흔한 이야기마저도 알모도바르의 영화에서는 가슴 깊은 곳까지 퍼져나가는 강렬한 파장을 일으킨다.
화면을 가득 메우는 스페인 남부의 아름다운 풍경과 아름다운 색채, 아름다운 음악, 그리고 평범하지만 애절한 사랑 이야기...
이 모든 것은 영화 속에서 한데 어우러져 기묘하면서도 애틋한 울림을 만들어낸다. 
 
영화의 영어 제목은 'Broken Hugs', 스페인어 제목은 'Los Abrazos Rotos'...
그러니까 '깨어진 포옹'  혹은 '조각난 키스'...
 
스페인인들에게 Abrazos는 포옹과 함께 나누는 키스를 말한다.
진한 키스든, 가벼운 키스든..
 
 


   
사랑의 도피를 하던 두 남녀는 자동차 사고를 당하기 바로 직전에, 차 안에서 마지막으로 가벼운 키스를 나눈다.
짧은 포옹과 짧은 키스, 곧이어 일어나는 자동차 사고...
여자는 그 자리에서 바로 목숨을 읽고, 남자는 부상과 함께 실명을 하게 된다.
 
그리고 남자는 그 짧은 키스의 순간을, 
짧지만 행복했던 사랑의 시간을 잊지 못한 채 평생 고독에 묻혀 산다.
 
먼 훗날 맹인이 된 남자가 우연히 구한 사고 당시 필름을 손으로 더듬으며 그때의 기억을 회상하는 장면은,
정말로 두고두고 잊지 못할 명장면이다. 
커다란 스크린 위에서 사고 직전 두 사람의 키스를 찍은 장면이 천천히 돌아가고,
부족한 화질 탓에 점묘화처럼 희미해진 이미지 위를 남자가 손으로 더듬으며 옛 사랑의 기억을 떠올린다...
 
영화(film)야말로 '보이는 이미지'를 넘어 '보이지 않는 이미지'까지 보여줄 수 있다는 감독의 평소 신념이 절묘하게 드러나는 장면이기도 하다.    
 
아무튼 평생을 지배하는 단 한 순간, 마지막 키스...
 
나는 믿는다.
긴 생의 시간보다 한때의 짧은 사랑이 평생토록 더 소중할 수 있다는 것을...,
오랜 시간 함께 살아온 사람보다 짧은 키스만을 나누고 헤어질 수 밖에 없었던 사람이 
평생토록 한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모도바르는 이미 어떤 수준을 넘어섰다.
관조하듯 편안하게 평범한 사랑을 다루지만,
그 속에서 우리의 삶을 가로지르며 지배하는 사랑의 거대한 힘을 보여준다.
 
영화를 본 후 한참 동안 그 사랑의 힘에 빠져 있었지만, 
지금은 그 사랑의 힘이 어쩐지 인간을 짓누르는 폭력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2015년 1월 17일 토요일

<밀레니엄 맘보>(2001) - 서늘한 청춘, 한 겨울 밤의 영화


 
영화에 대한 허우 샤오시엔의 사랑은 이 영화에서도 은밀하게, 그리고 충만하게 새어나온다.
일본 북해도에서의 유바리 영화제...
나이가 들수록 허우 샤오시엔은 가장 조용하면서도 울림이 깊은 목소리를 찾아가는 듯 하다.
 
먼저 눈에 띄는 건 시점의 교묘한 불일치, 분란..
영화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시기는 2001년이지만, 그 이야기 자체가 10년 뒤에 여주인공 비키가 내뱉는 독백으로 전달된다.
그러니까 화자의 시간은 2011년, 이야기의 시간은 2001년.
 
게다가 화자의 내레이션과 이야기 토막들의 순서가 뒤죽박죽이다.
내레이션이 화면에서 이어질 사건들을 미리 들려주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이미 일어난 사건들을 정리해주는 경우도 있다.
또 어떤 경우는 내레이션과 사건이 거의 동시에 진행된다.
더 골치아픈 건, 예상했던 대로 (허우 샤오시엔다운) 절제되고 또 절제된 사건 묘사...
마치 한 사건의 중요한 순간들은 다 피하고,
그렇지 않은 순간들만을 골라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 하다.
 
 
 
 
영화의 서사구조 자체도 분산적이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영화 전반에 삽입된 눈 쌓인 유바리의 풍경.
어느날 밤, 여주인공 비키는 바에서 일하는 대만/일본 혼혈 형제에게 '언제 일본에 가게 되면 너희 만나러 유바리에 들려도 되냐'고 묻는다.
형제가 해마다 겨울 한 달 동안(유바리 영화제 기간동안) 할머니의 여관업을 도우러 일본에 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곧바로 유바리 풍경이 이어진다.
하얀 눈이 수북히 쌓인 유바리의 밤 풍경...
비키는 형제 중 한 사람과 바에 앉아 음식을 먹기도 하고,
밤거리로 나가 수북히 쌓인 눈 가운데 몸을 던지며 놀기도 한다.
그리고 다시 대만...
비키와 하오하오의 아파트. 어두운 실내.
 
 
 
 
영화가 끝날 때 쯤에야, 관객은 중간에 삽입된 유바리 에피소드가 일종의 '플래시포워드'라는 것을 알게 된다.
영화 말미에 일어날 일을, 그러니까 서사구조상 한참 뒤에(약 1년 뒤에) 일어날 일을 아무런 설명 없이, 아무런 단서 없이 불쑥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이 플래시포워드는 비키의 상상 혹은 욕망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비키가 혼혈 형제에게 '언제 일본에 가게 되면 너희 만나러 유바리에 들려도 돼'라고 물을 때,
그녀의 마음은 이미 눈덮인, 차가운 일본의 유바리 밤거리를 거닐고 있었을 테니까...   
지긋지긋한 타이뻬이의 밤을 넘어, 차갑고 푸르른 유바리의 밤을 유영하고 있었을 테니까...
 
결국 영화의 이야기는 이렇게 정리될 수 있다.
스무 살의 비키는 하오하오와 사랑에 빠져 타이뻬이에서 동거를 시작하지만, 대마초와 마약에 쩔어 사는 하오하오의 일상과 또 그의 의처증적 행각을 견디지 못한다.
그러던 중 클럽의 사장이자 조폭의 중간 보스 쯤 되는 잭에게 의지하게 되고, 그의 도움으로 하오하오의 끈질긴 집착으로부터 벗어난다.
하지만 잭은 얼마 후 사업상(?)의 위험에 빠져 일본으로 급히 도주하고, 비키는 그를 찾아 일본 도쿄로 홀로 날아간다.
그러나 잭은 또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고, 비키는 도쿄에 혼자 남아 방황하다가 겨울이 오자 유바리로 떠난다.
그리고 거기에서 혼혈 형제를 만난다.
 
 
 
 
물론, 이 단순한 줄거리는 통상적인 서술 틀에 얹히지 못하기 때문에 관객에게 제대로 전달되질 않는다.
영화의 전체 구조도 비키와 하오하오의 관계에 심하게 치중되어 있어 매우 불균형적이다.
 
그러나 이 모든 혼란, 분산, 불균형을 한번에 해결해주는 것은 영화의 라스트 시퀀스다.
라스트 시퀀스는 영화의 형식적 특징을 나타내는 그 모든 혼란, 분산, 불균형이 바로 영화의 주제였음을 깨닫게 해준다.
즉 영화의 주제는 청춘이고 청춘은 바로 혼란, 분산, 불균형 그 자체라는 걸...
 
뜨겁던 청춘의 한때를 차갑게 식혀주는 것은 일본 유바리의 눈 덮인, 푸르른 밤풍경이다.
발이 푹푹 빠지는 두터운 눈길의 설경은 차가움과 포근함을 동시에 느끼게 해준다. 
차가움으로  한때의 열기를 식혀주고, 포근함으로 모든 상처를 보듬어주는..
 
 
 
 
특히, 라스트씬에서 나열되는 이미지들은 청춘과 영화를 교묘하게 연결시킨다.
손으로 그린 옛날 극장간판들, 볼 빨간 옛 배우들, 눈 덮인 밤길을 걸어가는 비키와 두 형제, 그리고 새들만 돌아다니는 텅 빈 거리...
그렇게 서늘함과 온기가, 어둠과 불빛이 공존하고 있다.
 
결국, 청춘이란 게 그렇지 않을까...?
지나는 동안의 서늘함, 기억하는 동안의 온기, 매 순간을 지배하는 어둠과 불빛의 어지로운 충돌...
그리고 영화도 마찬가지 아닐까...? 
지나가는 이미지들 앞에서의 서늘함, 기억하는 순간의 온기, 매 순간을 지배하는 어둠과 불빛의 어지로운 충돌...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비키는 그토록 사랑했지만 매 순간 떠나고 싶어했던 하오하오를 떠올린다.
그는 마치 '해가 뜨면 녹아내릴 눈사람 같았다'고 회상한다.
해가 뜨면, 어둠이 물러나면 사라질 것이 또 있다.
영화, 그리고 아마도 청춘... 
 

2015년 1월 16일 금요일

<그레이트 뷰티 La Grande Bellezza>(2013) - 쇠락해가는 유럽을 위한 조곡




뭐랄까.., '처연함'이 느껴지는 영화다.
몰락해가는 이탈리아의 (혹은 유럽의) 숙명을 어떻게든 폼나게 받아들이려는 자의 그 처연함..!
 
영화 마지막의 길고 긴 '엔딩 크레딧'은 끝내고 싶지 않은, 그러나 이미 끝나버린 로마네스크 문명을 애도하는 쓸쓸한 조곡 같았다.
무반주로 이어지는 그리고 서늘한 느낌의 조용한 중창, 강을 따라 느리게 유영하는 카메라의 시선, 그리고 그 시선에 비춰지는 낡고 오래된 로마의 건물들, 거리들...

아름다움과 낡음과 가난함과 고독이 교차하는 그 건물들 사이를 걸어봤기에, 이 엔딩 크레딧(라스트씬이기도 하다)이 주는 쓸쓸함을 미약하게나마 이해할 것 같다.
그리고 엔딩 크레딧을 따라 올라가는 무수한(정말 너무나 많은!) 이름들의 허망함에 공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작품을 만드는가..?
무엇을 위해 예술을 하고 문화를 이루며 문명을 만들어가는가..?
영화 내내 주인공의 냉소적이고 자조적인 표정에 쉽게 공감이 안 되더니, 영화 마지막 씬에서 격하게 공감을 느끼고 말았다..
 
 
영화 후반에, 살아있는 성녀로 추앙받는 104세의 수녀님이 등장한다.
식물의 뿌리만 먹고 산다는 그 수녀님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왜 식물의 뿌리만 먹는지 알아요? 뿌리가 중요하기 때문이지요."

너무나 상투적인 이 대사는 그러나 영화의 무거운 주제이기도 하다.
로마의 문명이 화려한 영광이었다거나 그 문명이 현대의 또 다른 문명을 이기지 못하고 쇠락했다는 얘기는, 분명 너무나 상투적이다.
하지만 그 상투적인 역사를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이들에겐 그 상투성 자체가 더할 수 없는 아픔과 쓸쓸함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누가 그들을 위로해주겠는가?
몰락과 쇠퇴를 잊고자 세속적 삶, 쾌락의 나날에 빠진 그들에게 누가 동정을 보내겠는가?
 
완벽한 아름다움의 첫사랑을 잃고 오로지 세속적 삶에 도취에 삶았던 주인공 젭 감바르델라.
이제는 65세라는 노년을 마주해 자신의 쇠락과 종말을 받아들여야 하는 그.
주인공 젭의 삶은 이탈리아의 숙명을 압축한다.
 
틈만 나면 주인공의 상상  세계를 가득 채우는 선명하고 밝은 파란색.
지중해의 색이자, 젊은 시절 주인공이 첫사랑을 만났던 바다의 색...
그 푸르디 푸른 색이, 영화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낡은 로마 건물들의 빛바랜 살구색과 절묘한 대비를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