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8일 일요일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Clouds of Sils Maria (2014) – 올리비에 아사야스

올리비에 아사야스Olivier Assayas 는 이제 ‘마스터’의 반열에 오른 듯 하다.
영화 중반부터 이 영화는 이미 ‘마스터피스’의 수준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이토록 섬세하면서도 웅장한 영화가 나오다니..!
연극/영화, 픽션/현실, 배우/등장인물, 과거/현재 등 세상의 모든 경계를 이토록 자유자재로 넘나들 수 있다니..!
그 모든 곳을 가로지르는 수많은 암시들, 다채로운 은유들, 중층의 리퍼런스들..
경지에 오르다 – 줄리엣 비노슈의 연기
줄리엣 비노슈의 연기는 압도적이다.
아마도 ‘빨간 풍선'(허우 샤오시엔, 2008) 때부터였을까..?
그저그런 평범한 연기들에 머무는 것처럼 보이던 그녀의 연기가 언젠가부터 높은 수준으로 도약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연기파 배우와는 거리가 있었고, 그렇다고 절세 미인이나 섹시 스타의 소리를 듣기에도 부족했던 애매한 정체성의 그녀였기에 나이가 들수록 왠지 초조해보였다..
그런데 ‘사랑을 카피하다'(키아로스타미, 2011)에서 놀랍도록 섬세한 감정 연기를 보여주더니, 이 영화에서는 드디어 만개한 연기의 수준을 보여준다.
자유자재의 감정 표현은 물론이고, 내면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심리의 변화를 그때그때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정확성으로 드러내 보인다.
영화 내내 그녀의 얼굴은 거의 클로즈업으로 포착되지 않지만, 미디엄 숏의 화면에서도, 심지어 풀숏의 화면에서조차도 그녀의 얼굴은 다채로운 내적 변화와 감정의 흐름을 섬세하게 표현해낸다.
어느새 그녀는 무성영화 시대의 배우들이 그랬듯이 얼굴 연기만으로 자신의 영혼까지 드러낼 수 있는 단계에 오른 것이다.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딱딱하고 밋밋한 표정 연기는 결과적으로 비노슈의 얼굴 연기를 더욱 돋보이게 해준다.
감독이 처음 그녀에게 의뢰한 역은 지적이고 자아 강한 매니저 ‘발렌틴’이 아닌, 헐리우드의 떠오르는 신성 여배우이자 스캔들 메이커인 ‘조앤’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에게 너무나 익숙한 역할보다 평소 잘 알고 있지만 해보지 못한 역할을 하겠다고 주장한다.
그녀의 의도는 연기의 폭을 넓히는 것이었고, 세간의 평은 어느 정도 그녀의 도전을 인정해주었지만(심지어, 세자르 영화제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그녀가 이 영화에 기여한 가장 큰 공헌은 비노슈의 연기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이 되고 말았다.
그녀가 원했든, 원하지 않았던 말이다…
 경지에 오르에 오르다 –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연출
이 영화를 통해 재능이 만개한 이는 비노슈 뿐만이 아니다.
감독인 아사야스도 그의 경력의 정점에 오른 듯 보인다.
예술과 현실을 자유자재로 오가면서 서로 다른 세 여인의 감정 상태를 이토록 섬세하게 표현해낼 수 있는 감독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자연의 변화와 삶의 변화, 그리고 감정의 변화를 이토록 절묘하게 겹쳐놓을 수 있는 감독, 그러면서도 동시대 사회상과 인간 군상을 예리하게 관찰해 풀어놓을 수 있는 감독…
데뷔 초기, 아사야스는 ‘겨울의 아이’와 ‘8월말 9월 초’  등의 영화들을 통해 트뤼포와 로메르를 잇는 또 다른 ‘프랑스적 감수성’의 감독으로 각광받았다.
섬세하면서도 깊이 있고, 절제되면서도 풍부한 감정 묘사는 프랑스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에 가까웠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1990년대 중반 이후 아사야스는 아무런 특색 없는 평작들만을 내놓으면서 지지부진한 상태에 빠져든다.
초반에 잠깐 반짝이다 소리 없이 사라져가는 그저그런 수재들 중 하나로 잊혀져간 것이다…
그런데 2008년 ‘여름의 조각들’을 내놓으면서 아사야스는 예전의 명성을 되찾는다.
화려했던 프랑스 문화의 시대가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섬세한 심리 묘사, 깊은 예술적 안목, 동시대 프랑스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진단 등으로 단번에 영화팬들을 사로잡는다.
지적이면서도 감성적이고, 개인을 얘기하면서도 시대와 사회를 얘기하며, 섬세하고 깊이 있는 예술론을 난해하지 않은 언어로 펼칠 수 있는 영화…
그것은 오로지 아사야스만이 할 수 있는 영화이기도 했다. 적어도 프랑스에서는 말이다.
아사야스는 그렇게 오랜 우회를 거쳐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영화로 돌아왔다.
황홀한 ‘월경’의 유희
영화 ‘클라우즈 오브 실즈 마리아’는 우리에게 그야말로 황홀한 월경의 즐거움을 안겨준다.
감독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관객은 모든 경계가 허물어지고 모든 세계가 서로 뒤섞이며 교차하는 황홀한 단계에 와 있음을 깨닫는다.
픽션과 실재, 예술과 삶, 자연과 문명, 나와 타인 사이의 경계가 모두 걷히고 서로가 서로를 반사하는 신비로운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그 황홀한 경험..
마치 리베트Jacques Rivettes의 영화처럼, 이 영화에서는 연극과 영화 그리고 현실이 자유롭게 서로 침투하며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월경 : 연극과 실재. 연극적 삶과 실재의 삶. 예술과 현실.. 리베트를 보는 듯..
….. 월경 : 자연과 문명
….. 월경 : 개인과 개인, 극적 자아와 실재 자아
아쉬운 점: 리퍼런스가 너무 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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